" " 요한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주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요"요1:23

나도 영적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 오직 영적 지혜는 위로부터 나와야 한다

임대건
2023.04.13
나도 영적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
10년 20년 30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그 성도가 영적인 지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그 사람의 자아가 신앙생활 덕분에 발달했다는 보장 또한 없다.

사람은 자신에게 조건화된 인격에서 비롯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신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것을 ‘영적우회’로 인한 해결이라고 한다. 이런 성도 또한 문제지만 이처럼 조건화가 해결되지 않은 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서적 과제가 정화되지 않고 영적 지도자 즉 목회자가 된다면 마태복음 15장 14절의 말씀처럼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이 되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내가 처음 하나님을 만나게 된 간증을 하지 않는다. 이적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내가 만나서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나를 바꾸게 하신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 않고 나의 손가락만 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을 너무나 좋아한다. 예수님께서 수차례 비유로 표지판이 가리키는 목적지를 보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 표지판의 모양과 성분, 재질만을 따지는게 내가 간증을 할 때 느꼈던 감정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바뀐 나처럼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원수가 바뀌어 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모든 원인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변해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저 사람이 변해서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늘 말한다. 신앙생활을 몇 년, 몇십 년을 했던지 영적 지식과 인격의 성숙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성경에도 보면 그렇게 영적 지식이 풍부했던 종교지도자들(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인 등)은 늘 예수님과 충돌했다.

그들은 진실을 추구하는척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머리에 주입된 지식에 예수님이 부합한지 안 한 지만 따졌고, 그 결과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선 자신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을 선동했다. 거기에 맞춰 추종자들은 선동된 군중심리에 적극 동참하며 예수님이 십자가형에 선고되도록 도왔고 심지어 제사장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며 조롱까지 했다고 마태복음 26장 67절 68절에는 말씀하고 계신다.

자 그런데 적어도 성숙한 지성인이고 조금이나마 안타까움과 긍훌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비참한 고통을 겪으며 죽으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러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당시의 종교권력자들은 영적우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미숙하고 비열한 자아 상태를 군중들에게 숨기고 은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다른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적 권위를 가지고 나 아니면, 내 교회 아니면 안 되고 오로지 매주일마다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하고 헌금과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격적인 자아가 잘 갖춰진 사람이라면 스스로 분별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미성숙하고 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그런 말들로 인해서 끊임없이 기복 신앙에 빠져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브릿지를 통해서 전국에서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 수없이 고민을 가지고 온다. 자신이 이번에 교회를 옮겨야 하는데 이곳에서 내가 받은 축복이 많아서 아들이 대학도 잘 갔고 아파트도 샀고 남편 승진도 했는데 목사님이 그동안 설교하신 내용대로면 자신이 교회를 옮기면 벌받을 거 같다고 그래서 함부로 못 옮기겠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금전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곳이 있는데 헌금이나 십일조를 다른 곳에 하면 안된다고 해서 추가로 그곳에 흘려보내자니 형편이 안되어서 그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분들이 수십 년 신앙생활하신 성도님들 이야기다.

가스라이팅? 그거 별거 아니다. 내가 우위를 점한 위치에서 그 지위를 이용해 심신이 미약한 사람에게 은연중에 반복된 사상과 철학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특히 영적인 우위를 점하고 사는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쉽게 영적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당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목회자와 성도는 인간관계 속에서 오직 진실과 공정을 철저히 추구하고 지킬 때 떳떳하고 아름다운 관계가 된다. 목회자는 자신 스스로 진실과 공정을 추구하지 않고 영적인 권위에 의지해야하며, 성도는 인정과 소속의 욕구에 사로잡히는 순간 언제든지 목회자는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로 성도는 당하자가 될 수 있음을 주의하자.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초이성적인 주장을 하고, 심지어 어떤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하면 내가 성경은 얼마나 읽고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해야 한다. 그 현상에만 현혹된다면 영적 가스라이팅을 당할 수 있고, 그런 현혹이 아니더라도 자신 스스로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 진실과 공정을 추구하는 성숙하게 발달된 자아의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게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오직 지도자와 조직에 순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야고보서 3장 17절 18절의 말씀처럼 오직 위로부터 난 성결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